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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초상(국보)



송시열 초상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지정 : 국보 제239호
• 분류 :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 지정(등록)일 : 1987. 12. 26.
• 수량/크기 : 1폭/가로67.3㎝×세로89.7㎝
• 재질 : 비단
• 시대 : 1651년(효종 2년)
•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선생의 초상화이다. 송시열 선생은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힘있고 논리적인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고 평생 주자학연구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이었다.

노론(老論)의 영수였다. 호는 우암(尤庵)·화양동주(華陽洞主) 등이었다. 1633년 생원시(生員試)에 1등으로 합격하였으며, 후에 이조판서·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었다.

송시열의 초상화는 5점이 전하고 있는데 모두 좌안7분상(左顔7分像)이다. 이 가운데 어용화사(御容畵師)가 그리고 어제(御製)가 쓰여 있는 국박본(國博本)(44세, 좌상(坐像))과 김창업(金昌業)이 그리고 권상하(權尙夏)와 김창협(金昌協)의 찬문(贊文)이 쓰여 있는 황강영당본(黃江影堂本)(73세)이 가장 좋다.

이 초상화는 가로 56.5㎝, 세로 97㎝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반신상이다. 머리에는 검은색 건을 쓰고 유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옷인 창의를 걸치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과장되게 표현된 거구의 몸체와 개성적인 눈썹 그리고 깊게 패인 광대뼈의 주름에서는 학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얼굴은 엷게 채색한 다음 갈색 선으로 주름을 그렸고 옷의 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이 그림 오른쪽에는 그가 45세 때 쓴 글이 있고, 윗 쪽에는 정조가 쓴 칭찬의 글인 찬문이 남아있다. 이 두 글에 의해 그의 나이 45세 때 그려진 것이라고도 하고, 깊은 주름과 하얗게 센 수염은 노년의 모습으로 그가 살아있을 때 노년의 모습을 그린 본을 따라 정조 때 옮겨 그려진 것이라고도 한다.

옮겨 그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화공의 솜씨가 뛰어나며 명암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표현한 강한 눈매와 숱 많은 눈썹, 붉은 입술 등에서 그의 과격한 성품이 보이며 옷의 흑과 백의 대조는 유학자로서의 기품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