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 근원

송씨의 뿌리

우리나라 송씨의 근원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신라 49대 헌강왕 이후로 짐작되는 시기에 당나라 호부상서를 지내고 귀화한 송주은(宋柱殷)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송주은의 뿌리는 중국 어느 시대부터 일까?

전설시대(三皇五帝)에 삼황중 수인씨(燧人氏)로부터 불의 씨를 잘 받아 보존 관리하는 법과 천문지리에 밝은 알백(閼伯)이란 분이 계셨다. 중국인들은 4000여 년 전에 누각 화성대(火星臺 일명 閼伯臺)라는 고대 천문대를 세웠다. 그들은 그 곳에 알백의 기념관과 흉상을 모시고 화신(火神)으로 모시고 추앙 숭배하고 있다.

알백의 29대 후손으로 전해지는 미자계(微子啓)의 성은 원래 자(子)씨였고 이름은 계(啓)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상나라(나라이름이 ‘상(商)’이고, ‘상’이 여러 차레 수도를 옮기는 과정에서 마지막 수도가 ‘은’이었다.) 30대 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동생인 신(辛)이 왕위에 올랐다. 신(辛)은 달기에 빠져, 폭정으로 상징되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 되는 주왕(紂王)이다. 주왕의 형인 미자계는 동생 주왕에게 폭정을 멈출 것을 간언해도 듣지 않자 그의 곁을 떠나고, 결국 제후들의 지지도 잃고 주 무왕이 반란을 일으켜 주(周)나라가 들어서게 된다.

주나라가 건국되자 미자계는 무왕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은왕조의 유족과 백성들을 구한다. 무왕이 죽자 은의 주왕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3년 만에 반란이 진압된다. 그 과정에서 미자계는 반란에 참여치 않고 충성과 신의로써 주왕실을 보호했기에, 그 공으로 상나라 발원지인 상구(商丘)에 봉해져 송국(宋國)을 건립하고, 상나라 유족들을 다스리게 되어 1대 국왕이 된다.(司馬遷, 『史記』, 「周本紀」)

이후 송나라는 송양공(宋襄公)시기에 춘추5패의 하나로 위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36대 755년 유지하다가 전국 시기의 송강왕(宋康王), 즉 송왕언(宋王偃)에 이르러 기원전 286년 제(齊)에 의해 망하였다.(司馬遷, 『史記』, 「宋微子世家」)

나라가 망한 후 왕족과 백성들은 자기나라 이름인 “송(宋)”을 대대손손 성씨로 쓰게 되었다. 족보에 의하면 28대조 풍(灃)은 조나라 초기, 29대조 격(檄)은 서한 중기, 46대조는 당나라 전성기의 인물로 전해진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송씨는 상구(商丘)가 발원지가 되고, 미자계가 시조가 된다. 상구라는 지형은 움푹 패어진 늪과 구릉으로 이루어졌다. 상나라 유족들은 이 곳 구릉지대와 숲속에 주거지를 정해서 정착해 살았다. 상나라 유족들이 거주하는 구릉이라 해서 상구라는 지명의 어원이 된다.

우리나라 송씨의 뿌리

송씨(宋氏)는 우리나라의 이름난 姓으로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을 비롯하여 여산(礪山), 진천(鎭川), 연안(延安), 홍주(洪州), 신평(新平), 서산(瑞山)등 약 15여개 본이 중추를 이루고 있다.

모든 송씨의 시조(始祖)에 관한 문헌을 『여산송씨 족보』에 의하면 송씨의 선계(先系)는 중국의 경조(京兆)출신으로, 당나라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후예로 전하며, 언제 어떤 이유로 고구려, 백제, 신라 三國중 어느 나라에 귀화하였는지, 그 년대와 사유에 대해서는 기록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여산송씨상계보(礪山宋氏上系譜)』상의 연대를 추정해보면 당나라가 멸망한 서기 907년(신라 효공왕 11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송주은의 7세손 송순공(宋舜恭)의 증손인 자영(自英)이 아들 3형제를 두었다. 첫째 유익(惟翊)은 여산(礪山)의 시조이시고, 둘째 천익(天翊)의 후손은 은진군 대원을 시조로 한 은진(恩津)의 시조이며, 셋째 문익(文翊)은 서산(瑞山)의 시조가 되어 우리나라 송씨는 세 가문을 기원으로 이룬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우리나라 송씨의 선대 계보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송씨의 선대 계보
  • 주은(柱恩)
    戶部尙書
  • 신검(愼檢)
    兵部尙書
  • 윤(允)
    吏部尙書
  • 진철(進哲)
    戶部尙書
  • 연호(延浩)
    工曹典書
  • 지양(至陽)
    兵曹典書
  • 순공(舜恭)
    東里學士
  • 성룡(成龍)
    吏曹典書
  • 흥렬(興烈)
    戶部尙書
  • 자영(自英)
    版圓判書
  • 유익(惟翊)
    壺山君
  • 여산송씨(礪山宋氏) 시조
    礪山君
  • 천익(天翊)
    恩津君
  • 은진송씨(恩津宋氏) 시조라고 전해지지만 대원에 이르기 까지 소목이 불분명해
    兩先正이 판원사 대원(大原)을 시조로 함
  • 문익(文翊)
    吏曹典書
  • 서산송씨(瑞山宋氏) 시조
우리나라 송씨의 선대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