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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국(宋鍾國)

동춘당문정공파

소개

미산공(薇山公) 송종국(고종 8 : 1871-정해 : 1947)

공의 이름은 종국이며 자는 용빈(用賓)이고 미산(薇山)은 호이다. 동춘선생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익위공 창노이다. 벼슬길이 빨라서 21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세자시강원 시종관 겸 장례원 상례에 제수되고 바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장차 승진이 끊이지 않을 텐데 불행히 적신이 나라를 팔고 국가가 망하여 영친왕이 국치를 당하여 일본으로 볼모로 가시게 될 때, 모시고 가서 영친왕을 돌보도록 하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통탄하고 배종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만일 그곳에 남았더라면 친일을 하고, 왜놈 밑에서 못된 쪽으로 부귀를 누리고, 자손까지도 부일을 해서 출세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단호히 이를 거절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에서 수많은 관직의 의혹이 있었으나 벼슬 길에 나서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고 가도를 세우는데 전력하였다. 특히 고향에서 1918년 3월 1일 동명사립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1918년 4월 1일 동명사립학교 개교(대덕군 동면 신하리 485)를 하여 지역의 아이들에게 신교육의 혜택을 받게 하였다. 1923년 3월 1일 국가에 기부하여 동명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게 하였다. 초등학교가 부지 등 독지가의 희사로 초등학교가 개교한 것은 희귀한 예다.(김홍균, 송광헌 증언)

호 미산(薇山)은 서산 즉 수양산을 말한다. 서산의 고사리와 동해의 물로서 술을 올리니 경의 맑음을 표하는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유래한다. 주나라 무왕이 아버지 문왕이 죽은 뒤 즉시 은나라 주왕을 친 것을 불효라 하여 백이숙제의 의리는 주나라 곡식은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 먹었다. 그들은 수양산에 숨어 살며 굶주려서 죽을 때에 이르러,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저기 저 서산에 올라가서 그 아름다운 고비를 캐리라(登彼<西山>兮, 采其薇矣 : 사기 백이전) 그러나 백이와 숙제만은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결국은 굶어 죽었다.
(以堂 成彬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