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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흠(宋文欽)

동춘당문정공파

소개

송문흠 예서 경재잠 (보물 제1678호)

한정당집 (대전시립박물관)

한정당 송문흠 묘비

공의 이름은 문흠이고 자는 사행(士行)이며 한정당(閒靜堂)은 호이다. 동춘당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묵옹공 요좌이다. 도암 이재의 문인이다. 문장과 시에 능했고, 특히 필체가 뛰어났다.

이규상의 『유화록』에 보면 송문흠은 팔분서와 전서를 잘 썼는데 팔분서는 굳세고 아름다워 근세의 으뜸이 될 만하다. 시문이 어린나이에 성취되어 성균관에서 여러 차례 장원하였다고 한다.

호 한정당(閒靜堂)의 유래는 송문흠이 만년에 산 밑에 살면서 여기에 연못을 파 연꽃을 심어놓고 별당을 지어 당호를 짓고 스스로 자호로 삼았다. 한정당은 속세를 떠나서 한가하고 고요함을 사랑하며 자유로운 대자연의 경지에 이르러 행복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그는 당기에서 “……힘써 속세를 떠나서 한가하고 고요함에 붙여 사랑할 따름이니 이로써 스스로 어질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높다고 하지 아니하며 생각하기를 적당하게 잡념을 비우고 모든 것이 구애받는 것이 없고 통달한다하니 책을 펴놓고 밥 먹음을 잊어버리고 나무그늘을 보며 새소리를 듣고 바람이 서늘함을 기뻐하며 즐기는데 이르러서 무릇 한가하고 고요함을 사랑하는 바는 여기에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곧 증점의 즐거움인데 어른과 아이를 기다리지 않고 기우(沂雩)에 가지 않고도 방안에서 얻어 유식하고 기거하는 곳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자유자재로 대자연과 합치되는 경지를 말한다. 이규상의 유화록에 보면 송문흠이 거처할 조그만 집(한정당)을 지을 때, 대장장이와 목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가 직접 하였다.

그때 쇠를 쓰지 않고 문지도리는 대나무를 깎아 썼는데 그가 죽은 뒤 40년이 지났어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