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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수(宋樺壽)

소개

취옹당 재실-취옹당과 청죽당의 재실

대전 동구 이사동

공의 이름은 화수이고 자는 영로(榮老)이며 호는 청죽당이다. 7세에 부친상을 당하고 10년 뒤에는 모친상을 당하였다. 이에 형들과 여막을 짓고 예를 다하였다. 성품이 온순하고 단아하여 세속의 명리를 구하지 않았으며 공손하고 검소하게 자신을 다스렸다.

공의 큰 자제인 송월재 희득은 송월재공파의 파조가 되고 취옹당 희명은 취옹당공파의 파조로 나뉘어졌다. 공의 호 청죽당의 대나무 소리가 들리는 집의 유래는 대청의 이름을 청죽(聽竹)이라고 이름붙인데서 유래되었다.

…… 공이 일찍 천문서를 널리 연구하여 장차 변란이 있을 것을 알았다. 과연 1년이 지나 왜구가 침략하였으나 문을 걸어 잠그고 미리 피하였으므로 공의 집안은 화를 면하였다. 이로부터 성시(城市 : 서울)에 뜻을 끊고 원서(園墅 : 속세, 시골 농장)에 숨어살면서 대청의 이름을 청죽(聽竹)이라 하고 그곳에서 소영(嘯詠 : 시가를 읊다)하여 스스로 즐기었다. 공의 손자 국택 국준이 서로 문과에 올라 문행(文行)으로써 서로 숭상하지 않음이 없으니 아! 송촌의 송씨는 더욱 번성하겠구나.……(《사우당집 하》 p284 : 이도사 의길이 찬술한 청죽공 묘표에서 나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