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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몽인(宋夢寅)

소개

금암 송몽인(1582 : 선조 15 - 1612 : 광해군 4)은 자가 문병 호는 금암이다. 선천적인 재주가 남보다 슬기롭고 영리하여 7세부터 글을 지었으며, 성장하여서는 시의 격조가 높아졌다. 24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곧 대과에 급제할 것으로 믿었지만 병이 들어 3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송몽인은 유고집으로 『琴巖集』 1책이 있다.

금암공은 송촌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 양지뜰(양지말)에 살았다. 송촌동에서 비래동으로 가는 길옆에는 비래암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이 곳을 지나 동춘당 앞으로 해서 중리동으로 흐른다. 그런데 송촌과 양지말 사이의 냇물은 커다란 바위로 깔려있고 더러는 원두막 크기의 판판한 바위도 있어 거기에 앉아 시를 읊거나 거문고를 타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다. 바위 군(群)위에는 돌덩이가 있는데 거기에는 「琴巖(금암)」이라 새겨져 있다.

송몽인 유고집『琴巖集』

이 돌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때 송촌에서 양지말로 가는 길의 제방용으로 사용되고 있던 것을 1988년 시냇물 돌 위에 얹혀 있다가 1995년 송촌 택지개발 사업 때 현 소대헌 고택 앞으로 옮겼다. 금암(琴巖)의 호는 이 돌에서 유래되었다.

그 사실은 우암선생이 지은 효정공 묘표에 있는데 “……마을 위에 금암(琴巖)이 있는데 냇물이 지대가 더욱 상쾌한 고로 증 참판 진사 휘 몽인이 여기에 거주하여 자호로 하였고, 『금암집』 1권이 세상에 간행되었다. 아들이 없어서 재종형 희명의 둘째 아들 국택으로 후계를 하였다.” 송몽인은 선천적으로 재주가 뛰어나서 7세부터 글을 짓기 시작하여 좀 자라서는 격조 높은 글을 지었으나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집 『금암집』이 있는데 1625년 민씨 부인과 사우당이 유고를 수집하여 편집했으며, 그것을 교정하여 서문을 쓴 분은 민부인의 외숙인 지봉 이수광이며, 발문을 쓴 분은 동회 신익성이고, 그것을 손수 써서 목판에 새기게 하여 비래암에 보관한 분은 죽창 이시직과 비래암 스님 지숭이다.

광해군 8년(병진 : 1618) 봄에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그 후 고종 26년(1889) 후손 송병준(개명하여 송병화)이 증보하여 간행하였다. 처음 간행한 책에는 시 150편과 계(啓) 1편이 수록되었으나 중간본에는 묘명(墓銘), 유사, 부인 민씨의 만사(輓詞) 등을 증보하였다.

송몽인의 시에 대하여 대제학을 지낸 송상기는 ‘지금 공의 시를 보니 청신하고 준엄하고 고결하여 한 마디로 속된 말이 없다. 그 정신과 기미가 사람에 방불하다는 것을 상견할 수 없다.’라고 평하였다. 송몽인의 시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안목으로 보아도 시 세계가 깊고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1986년(병인) 12월 30일 윤충호가 譯文 발문을 써 국역한 것을 사우당파 문중(대표 : 송우준)에서 간행하였다.

甲川八景爲春崖1)兄題
北里兒童閘 南鄰帟幙張 村蕭社鼓賽神忙 蘋蘩政聲香 綵袖翻瑤席
淸酤잠玉觴 歸來不省醉歌狂 花月滿鄰墻 春社賽神

갑천8경을 춘애형을 위하여 노래함
북쪽 마을 아이들 요란하게 떠드는 구나
남쪽 이웃에는 장막 벌려놓았도다.
동리마다 퉁소 소리 터주마다 북소리는 푸닥거리 한참 바빴는데
마름과 다북쑥으로 만든 제물은 그 냄새가 향기롭기 짝이 없도다
무당의 옷 색동 소매는 구슬 자리에 펄렁거리고
집사는 맑은 술 가지고 옥잔에 가득히 따르네.
돌아오는 길에 술 취하여 세상일 다 잊고 미친 듯이 노래 부르니
꽃과 달이 이웃집 담장에 가득 하구나

사고(社鼓)는 터주신에게 고사 지낼 때 울리는 북소리를 말하고, 새신(賽神)은 고사나 굿, 푸닥거리를 말하며, 빈번(蘋蘩)은 변변치 못한 재물을 말한다. 그리고 채수(彩袖)는 색동저고리를 말한다. 이 시와 아래에 소개하는 시는 송몽인이 갑천 팔경을 노래한 것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시다.

이 시에 담긴 서정과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옛날 갑천 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선인들의 삶을 그리워하게 하는 감정이 파도치게 한다.

玉字秋雲盡 銀河夕露零 娟娟初月上靑冥 餘彩散簷楹 草際螢飛息
松梢鶴夢驚 欄干倚遍欲三更 襟抱有餘淸 東峯吐月

옥같이 맑은 하늘에 가을 구름 거두어 다 없어졌는데
은하수는 반짝거리고 저녁 떨어져 차갑기만 하네.
맑고 밝은 초생 달이 푸른 공중에 높이 떠오르니
남은 채광이 처마 기둥 사이에 흩어져 있구나.
우거진 숲속에는 반딧불이 날았다 쉬었다 하고
소나무 가지에는 학이 꿈에서 놀라 날기도 하네.
난간에 의지하니 그럭저럭 밤은 이미 삼경이 되었구나.
마음 속 생각조차 여청(餘淸)으로 인하여 서늘한 듯 하도다.2)

송몽인의 시는 대전지역의 송촌, 갑천과 인근 계룡산 등 서정적인 정서와 향토적인 풍광을 잘 나타내고 있다. 3)

주석

  • 1) 춘애(春崖)는 송문창이니 은진송씨 쌍계당파이다. 자는 태지요 춘애는 그 호이다. 萬曆壬午(1582)에 사마양시에 합격하였다. 『은진송씨 정해대보』, 『은진송씨 쌍계당파보』
  • 2) 송몽인, 1986, 『琴巖集』, 恩津宋氏四友堂孝貞公宗中, P79-P81
  • 3)김선기, 2009, 「대전의 옛 시가」, 『대전문화』, 대전광역시, p95~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