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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능상(宋能相)

우암문정공파

소개

운평(雲坪) 능상(能相) 묘역

충북 영동군 양산면 황곡리

송능상(宋能相)은 자가 사능(士能)이고 운평(雲坪) 또는 동해자(東海子)로 불리었다. 우암 송시열의 증손이자 감역(監役) 한원(漢源)의 자제로 1710년(숙종 36) 11월 1일에 태어나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에서 배웠다.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유학(儒學)을 공부하여 율곡(栗谷) 이이(李珥),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맥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 운평(雲坪)의 학통을 성담 송환기(宋煥箕), 이의조(李宜朝)에게 전수하여 학문의 맥을 이어나갔다.

1739년(영조 15) 학행(學行)으로 천거(薦擧) 받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자의(諮議)가 되고 1742년에 왕세자가 학문을 시작하게 되자 별유(別諭)로 발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다음해에도 조지서 별제(造紙署 別提)와 이어 장령(掌令),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45년(영조 21)에 장령(掌令)을 제수 받고 1747년에 익위사 사어(翊衛司 司禦)가 되고 다시 장령이 되었다. 뒤에 사헌부 집의(司憲府 執義) 등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묘향산에 들어가 학문 연구를 하였다.

운평(雲坪) 능상(能相) 묘비

충북 영동군 양산면 황곡리

그는 본래 탁월한 자질이 있었으며 성현의 학문에 힘썼고, 성품이 너그럽고 컸으며 체격이 크게 훌륭했다. 20여 세에 이미 대학자로 이름이 날렸으며 일생을 학문에 전념하고 소신에 따라 행동한 곧은 선비였다.

문장은 정박준영(精博雋永)하였지만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 사람들이 글을 청하면 모두 50세 이후에 짓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것이 지켜졌다.

젊어서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묘향산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하다가 1758년(영조 34)에 하세하였다.

묘소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 황곡리(永同郡 陽山面黃谷里) 건좌(乾坐)에 있으며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행장(行狀)과 권돈인(權敦仁)이 지은 묘갈(墓碣)이 있다.

학문이 뛰어나 홍성군 서부면에 있는 양곡사(暘谷祠)에 배향되어 있으며 저서로는『운평집(雲坪集)』10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