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정보

검색

남양홍씨(송이연의 배위)

동춘당문정공파

소개

열부 남양홍씨는 제태( 泰)의 따님으로 1756년(영조 32)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예(才藝)가 출중(出衆)하고 영리하였으나 얼굴에 항상 슬픈 빛을 띠고 있어 그 어머니는 괴상하게 여겨 좋은 말로 사람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쳤다. 자라서 과년(過年) 하매 문원공 늑천( 泉)의 자제 이연공(履淵公)에게 출가하였다. 덕망이 있는 집안에 시집을 온 홍씨부인은 시부모를 극진히 받들고 남편을 정성껏 공경하여 모든 부녀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 홍씨부인의 정숙함과 지성으로 집안이 날로 더욱 화목하고 번창하더니 뜻하지 않게 괴질(怪疾)이 돌아서 부부가 함께 그 돌림병에 걸리고 말았다. 홍씨부인은 자신의 병을 이겨내면서 남편인 이연공의 치료에 허덕였다.

이에 의원(醫員)이나 보는 사람들이 홍씨부인 당신의 병이 위중하여 쾌차하기는 틀렸다고 하였다. 거기다가 남편인 송공의 병은 홍씨부인 자신보다도 더 위급하다고 일렀다. 이에 홍씨부인은 과부 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음독으로 자진하였다. 남편인 이연공(履淵公)은 차도가 있어 아내를 찾은 즉 아내는 이미 별실(別室)에서 죽어 있었다. 이연공 (履淵公)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집안이 조용해지고 시실(屍室)을 살펴보니 독약을 마신 그릇이 놓여 있고 품속에는 예리한 칼과 유서(遺書)가 한 통 있었다.

남편에게 드리는 그 글 속에는 구절구절마다 당시 규방 아녀자의 법도였던 절의(節義)가 배어 있었다. 그 때 부인의 나이는 겨우 28세였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사람들은 군(郡)에 , 군에서는 도에, 도에서는 조정에 홍씨부인의 절행을 올리게 되었다. 마침내 조정에서는 1843년(헌종 9)열부의 정려를 내렸다. 그런데 집안에 연고가 있어 정려를 세우지 못하였다고 가승(家乘)에 기록이 전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