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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석(宋康錫)

장성공파

소개

운곡(雲谷) 강석(康錫) 묘역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달산리

송강석(宋康錫)은 자가 진숙(晋叔)이고, 호는 운곡(雲谷)이다. 1663년(현종 4) 2월 21일에 진산공(珍山公) 시묵(時默)의 자제로 무주공(茂朱公) 시걸(時杰)에게 양자를 간 일송재(一松齋) 기덕(基德)의 둘째 자제로 태어나 세한재공(歲寒齋公) 송시도(宋時燾)의 아들 종사랑공(從仕郞公) 기억(基億)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슬기로웠는데 글을 익힘에 화양동에 머물러 있던 우암 문정공에게 가서 직접 훈도를 받았다. 문정공도 부탁을 받은 묘지(墓誌)나 묘갈(墓碣)들을 찬술(撰述)할 때면 그에게 받아쓰도록 하였으며 서찰(書札) 또한 대신 받아쓰도록 하였다. 문정공이 주역을 가르쳐주면서“이 책은 익히기 가장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너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문정공의 문인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에게도 수학하였다.

운곡(雲谷) 강석(康錫) 묘비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달산리

과거(科擧)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더욱이 우암 문정공의 직(直) 사상을 지키려 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문정공이 제주도로 귀양 갈 때 그의 할아버지인 세한재공이 수행하였는데 그도 더불어 배향하였다.

만년에 보은에 있는 구병산 만확곡에 집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1704년(숙종 43) 문순공(文純公) 권상하(權尙夏)의 추천으로 영소전3) 참봉(永昭殿 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사부(師傅)와 자의(諮議)의 물망에 올랐으나 나아가지 않고 1721년(경종 1) 3월 5일에 59세에 하세하였다.

묘소는 충북 보은군 삼승면 달산리(忠北 報恩郡 三升面 達山里) 내 하가습산소촌(下可習山所村)에 있다. 가장(家狀)은 손자 희상(喜相)이 짓고 행장은 족손 문경공(文敬公)환기(煥箕)가 지었으며 묘갈은 좨주(祭酒) 족손(族孫) 내희(來熙)가 지었다. 저서에 『운곡집(雲谷集)』이 있으며 보은(報恩) 산앙사(山仰祠)에 배향되었다.

주석

  • 3) 영소전(永昭殿) :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위패가 모셔진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