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정보

검색

송시호(宋時豪)

첨사공파

소개

서호(西湖) 송시호(宋時豪) 묘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송시호(宋時豪)는 자가 이걸(以傑)이고, 호는 서호(西湖)이다. 첨사공(僉使公) 송세욱(宋世勖)의 후손으로 1604년(선조 37)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의 옛 지명인 사한리(沙寒里)에서 태어났다.

사복시 판사(司僕寺 判事)로 재직 중인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의병(義兵)을 조직하고 군량(軍糧)을 조달하여 오랑캐와 악전고투 중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의 강화(講和)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북향사배(北向四拜)를 드린 뒤 멀고 먼 경남 기장(慶南 機長)으로 내려가 터를 잡은 뒤 후손들은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송시호(宋時豪)는 처음 그곳에다 소호정( 湖亭)을 짓고 주자학(朱子學)을 강독(講讀)하니 사방에서 현사(賢士)들이 운집하였다고 한다. 그 뒤 권적(權 ), 월천(月泉) 신오(辛奧), 6대손 송관수(宋觀洙), 진수(晋洙) 형제, 그리고 향사(鄕士)인 박능필(朴能弼),문기빈(文起彬), 김성언(金聖言), 정주범 (鄭周範), 정내연(鄭乃淵), 양극로(梁克魯) 등이독서(讀書)를 강송(講誦)하고‘고지호월지청풍(古之吳越之淸風)’으로 시서(詩書)를 저술(著述)하여 교류가 두터웠다고 전한다.

1667년(현종 8) 8월 13일 향년 63세로 타계하여2) 정관면 달산리(鼎冠面 達山里)에 장례를 지냈다가 최근에 장안읍 좌천리(長安邑 佐川里)로 이장하였다.사후에 유림들은 정관면 달산리에 사우〈향모사(鄕慕祠)〉일명〈서호재(西湖齋)〉를 세우고 그를 배향하여 매년 음력 3월 초 5일에 향사(享祀)하여 왔다. 최근에 그 지역이 정관신도시개발지역으로 개발됨에 따라 2007년에 장안읍 좌천리에 새롭게 옮겨 짓고, 기장향교 유림들이 향사를 받들고 있다.

주석

  • 2) 방손 송서호가 족보를 참고하여 유추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