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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관(宋有觀)

판관공파

소개

효자(孝子) 송유관(宋有觀) 묘역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

송유관(宋有觀)은 자가 사첨(士瞻)이다. 지평공 시승(時昇)의 자제로 1627년(인조 5) 3월 8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이미 10세에 문리가 트였다. 우암과 동춘 두 선생에게 수학하였으나 과거 준비에는 힘쓰지 않고 오로지 인격도야를 위한 경학에 힘썼다.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매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효험이 없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받아내어 받들었다. 이윽고 하세하자 시묘살이를 지극히 하여 몸까지 상하는 효도[傷孝]를 다했다.

1663년(현종 4) 5월 5일에 타계하여 배위 순흥안씨와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에 합폄하였다.

1663년(현종 4) 의금부 도사에 추증되었고, 우암은 그의 묘소에‘효자 아무의 묘’라고 표제 하였다. 그의 증조 선무랑공 경창(慶昌), 아버지인 지평공 시승(時昇)과 함께 3세가 효행으로 정려의 명(命)을 받았으므로 3효자라 일컫고 있다.

1684년(숙종 10)정려가 내려졌다. 이재(李縡)가 정려기를 짓고 민진후(閔鎭厚)가 묘표를 지었으며, 뒤에 송각헌(宋恪憲)이 묘갈명을 지었다.

이와 같이 삼효자(三孝子) 정려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다. 그는 효종연간에 지평공 시승의 아름다운 효행을 기록하고, 정려를 내려야 할 마땅한 이유를 설명했다. 현종 병오(丙午 : 1666)에는 위에서 온천에 횡행했을 때 지평공 시승과 도사공 유관 부자의 효행 사실을 다시 위에 아뢰서 유관을 의금부 도사로 추증하도록 하였다. 숙종 갑자(甲子 : 1684)에 아들 후겸이 상소하여 정려가 내려지게 되었다. 지평을 추증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