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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창(宋慶昌)

판관공파

소개

효자 선교랑(孝子 宣敎郞) 송경창(宋慶昌) 묘역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

송경창(宋慶昌)은 자가 운구(運久)이다. 1541년(중종 36) 12월 9일 흥해군수(興海郡守) 응수(應秀)와 증숙부인(贈淑夫人) 진주강씨(晋州姜氏) 사이에 1남 2녀의 장남으로 송촌에서 태어났으니 할아버지는 선무랑공(宣務郞公) 여즙(汝楫)이다.

가문의 음덕으로 선교랑을 제수 받았으나, 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나자 부모를 모시고 고향인 송촌에 내려와 살았다.

송경창(宋慶昌)의 속삼강행실도

이 그림은 속삼감강행실도에 있는 것으로 선교랑 부군(경창)이 아버지 홍해공을 보호하려다 왜적의 칼에 맞는 장면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회덕 지역을 점령할 무렵 아버지인 흥해공을 모시고 피란을 가다가 왜병을 마주쳤다. 당시에 왜병은 노인들이 젊은이를 자극하여 의병을 일으킨다고 하며 보는 즉시 죽였다. 이에 그가 아버지를 안고 사정을 하니 왜적이 감동하여 돌아가려 했다.

이때 흥해공이 왜적을 꾸짖으니 왜적이 다시 칼을 빼었다. 이에 그가 두려워함이 없이 아버지를 지키려다 모두 살해되었다.

이때가 1592년(선조 25) 8월 9일이었다.

효자 선교랑(孝子 宣敎郞) 송경창宋(慶昌) 정려각 내부의 편액(3효자)

세종특별시 장군면 은룡1리

왜란이 끝난 뒤 선교랑공의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선조는 정려를 세우도록 하여 송촌에 세웠다가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화동으로 옮겨 세웠고 1980년대 다시 공주시 장기면 은룡1리 종산 아래로 옮겨 세웠다. 또 화공(畵工)을 시켜 그 정상을 삼강행실록 (三綱行實錄)에 첨부하도록 명하였다.

묘소는 선무랑공 묘소 뒤 신좌(辛坐)에 있다. 가장(家狀)은 현손 후겸(後謙)이 짓고 우암(尤庵) 문정공(文正公)이 그 묘에다‘孝子某之墓’라 표제하였다. 묘지(墓誌)는 난곡(蘭谷)송병화(宋炳華)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