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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민(宋尙敏)

동파공파

소개

석곡(石谷) 송상민(宋尙敏) 정려각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

석곡(石谷) 효절공(孝節公) 송상민(宋尙敏)
(1626/인조 4~1679/숙종 5)

자(字)는 자신(子愼) 호는 석곡(石谷) 시호는 효절공(孝節公)이다. 회덕 동쪽 마산에서 태어나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문하에서 배우고, 1660(현종 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성격이 바르고 곧았다. 당시 남인과 복상문제로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1679(숙종 5)년 우암의 무죄를 상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영의정 허적의 탄핵을 받아 매를 맞아죽었다. 이듬해(1680/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죄가 사면되었다. 공조좌랑에 추증되었고 지극한 효행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1893(고종 43)년 : 문헌공 입재 송근수의 상소로 사헌부집의와 제학(提學 : 예문관 홍문관의 종2품)의 증직을 명하시었다. 시호를 특별히 효절공(孝節公)이라 내렸다. 자혜애친(慈惠愛親) 한 것을 효(孝)라 하고 호렴자극(好廉自克)한 것을 절(節)이라 한다. ‘자상하고 은혜롭게 어버이를 사랑하며, 청렴함을 좋아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극복했다’는 뜻이다.

송상민(宋尙敏)은 자가 자신(子愼)이고 석곡(石谷)은 호이다. 부호군 시흥(時興)의 아 드님이자 동파공 여익(汝翼)의 6대손으로 1626년(인조 4) 2월 25일에 태어났다. 총명하 고 지혜가 있어 말을 배우면서 글을 함께 익혔다. 동춘(同春)과 우암(尤菴) 두 선생 문하 에서 수학(受學)을 하고 1648년(인조 27)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스승 우암 문정공의 거처인 회덕에서 학문의 연구에 전념했다.

1679년(숙종 5) 남인 허목(許穆)과 복상(服喪) 문제를 둘러싸고 우암의 2차에 걸친 예 론(禮論)에 대한 소(疏)를 임금에게 바쳤다는 죄로 영의정 허적(許積)의 탄핵(彈劾)을 받 고 복상(服喪) 7일에 매를 맞아 타계[杖死]하였다.

이듬해에 있었던 경신대출척(庚申大 黜陟)으로 원통함을 씻고 공조좌(工曹佐) 2차에 걸쳐 추증(追贈)되고 또한 그의 절의를 높이 사서 자제들을 등용하도록 명하였다. 행장은 장암(丈庵) 정문경공(鄭文敬公) 호 (澔)가 짓고 묘표는 강재(剛齋) 송문간공(宋文簡公) 치규(穉圭)가 짓고 송공(宋公) 여규 (如圭)가 쓰고 묘갈은 연재(淵齋) 송문충공(宋文忠公) 병선(秉璿)이 짓고 군수 송공(宋 公) 병화(秉和)가 썼다.

도학(道學)과 절의(節義)가 훌륭하여 정절서원(靖節書院)과 남간사(南澗祠)에서 제향 (祭享)을 받들고 있다. 효행으로 정려를 받아 정려각이 현재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서있다. 저서에『석곡봉사(石谷封事)』가 있다. 묘소는 대전광역시동구 마산동에 있다. 슬하에 자제 후석(後錫)과 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