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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상(宋天祥)

주부공파

소개

화계정사(華溪精舍)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등곡)

송천상(宋天祥)의 자는 성경(成慶)이며 호는 남촌(南村)으로 주부공(主簿公) 미년(眉年)의 현손(玄孫)이며 통정대부(通正大夫) 충기(忠己)의 자제로 1567년(명종 22) 3월 13일에 태어났다. 타고난 천성이 용감하고 효성도 지극하여 주위의 귀감(龜鑑)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병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지례(知禮)의 교궁(校宮)에 미치자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피란 가는 것을 보고 통분을 금치 못하였다.

남촌(南村) 송천상(宋天祥) 유허비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등곡)

그는 여기저기 타오르는 불길이 공자의 영정(影幀)에 옮겨 붙을 것을 염려하여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재빨리 오성위판(五聖位版)을 등에 지고 영정을 두 손에 들고 화염 속을 헤치고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그 길로 등곡(藤谷)에 가서 초가삼간을 세워 오성위판(五聖位版)과 영정을 안치하고 난리 8년 동안에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잊지 않고 분향을 올리고 봄가을 두 계절에는 반드시 제사를 올렸다. 난리가 끝난 후 1599년에 한준겸(韓俊謙)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순찰하는 중에 등곡에 들려서 이 사실을 알고 시를 지어 그의 갸륵한 정성을 찬미하였다. 후에 교궁(校宮)을 새로 세울 때 조정에 상신하여 그의 공로를 치하하였다.

1626년(인조 4) 3월 12일에 타계하였다.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慶北 金泉市 大德面 釣龍) 1리에 유허비가 있고, 1860년(철종 11) 대덕면에 본향유림에서 화계사(華溪祠)를 세워 그의 지고(至高)한 유혼을 길이 모시고 있다. 저서로『남촌실기(南村實記)』상하권에 전해지고 있다.

부인은 성산이씨(星山李氏)이며 회근(晦根)의 따님으로 형제를 두었다. 장남은 좌랑(佐郞) 석조(碩祚)이고, 차남은 통덕랑(通德郞) 해조(海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