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송씨 상대세적

1. 자세한 세적이 실전(失傳)된 상대 조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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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세적이 실전(失傳)된 상대 조상들

『은진송씨 족보』에 보면 은진송씨의 시조는“고려 때에 판원사의 벼슬을 지낸 대원(大原)인데 처음 이름[初諱]은 견(堅)이고 자(字)는 천지(川至)이며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졌다 하나 이 사실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는 짤막한 기록만이 전해질 뿐, 그가 언제 은진 땅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윗대는 누구였으며 부인[配位]은 어느 성씨의 누구 따님인지 등을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점에 대한 궁금증은 일찍부터 제기되어 조선 중기에『은진송씨족보(恩津宋氏族譜)』6)를 처음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우암 문정공 시열(時烈)을 비롯한 문중의 어른들이 모여 논의한 내용 가운데에 고심한 흔적이 당시의 문집들에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덕은가승(德恩家乘)』말고도 실제『은진송씨족보(恩津宋氏族譜)』의 서문에도 세상에 전하기를 여산송씨와 우리 은진송씨는 그 근원이 같아 유익(惟翊)이 여산송씨의 시조요, 그 아우 천익(天翊)이 은진에 살았다고『여산송씨족보』에 실려 있다고 하나 상고할 길이 없고 또한 천익부터 판원사부군까지 그 간에 몇 세(世)가 지났는지 알 길이 없다. 고 간략히 적혀 있다.

이것으로 일단 은진송씨는 시조를 천익(天翊)으로 소급할 수 없는 이유와 판원사(判院事) 대원(大原)을 일세(一世)로 모시게 된 내력, 그리고 그가 군(君)으로 봉해진 은진 땅을 본관으로 정한 사연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조 판원사가 은진군으로 봉해진 사연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은진 고을이 큰댁들이 살고 있는 여산 고을과 불과 20여 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척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기에 나라로부터 은진군으로 봉해진 것이 아닌가도 짐작할 수 있다.

2대 득주(得珠 : 득주(得周)라고도 하였다고 하며, 처음 이름을 득주(得周)라고 했다.)는 지금의 군수에 해당하는 군사(郡事) 벼슬을 지냈다고 적혀 있고, 3대 춘경(春卿) 역시 보성군사(寶城郡事) 벼슬을 지내셨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들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언제 타계하고 부인들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은진송씨대종회에서 『나주정씨세보 상계(羅州鄭氏世譜 上系)』를 입수한 바 있는데 거기에 보면“득주는 고려 고종 때의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상장군(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上將軍) 및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으로 추봉(追封)된 정송수(鄭松壽)의 사위이자, 금자광록대부 참지광정원사(金紫光祿大夫參知光政院使)의 벼슬을 지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봉해진 정가신(鄭可臣)의 매제(妹弟)로 벼슬은 지군사(知郡事)를 지냈고, 그 아들은 송춘경(宋春卿)으로 지주사(知州事)”라고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보아 2대 득주(得珠)의 배위(配位)가 나주정씨로 확인되었다.[종보 제74호 (2003. 4.25) 종보 제79호(2004. 3. 1) 군사 득주 배위 나주 정씨]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정착해 살았는지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길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은진송씨의 본관 고을인 은진은 은진송씨의 근원지라는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녔을 뿐이지, 그곳에서 세거 지로써의 맥을 더듬기는 어려운 것이다.

주석

  • 6) 은진송씨 족보는 송담(松潭) 남수( 壽)와 문충공(文忠公) 규암(圭庵) 인수(麟壽) 등이 각각 만 든 이른바 팔촌보(八寸譜)라는 가승(家乘)이 있었으나, 그 뒤 불에 타버리거나 잃어버려 전해지 지 않음을 안타까이 여긴 우암이 일가들과 의논하여 처음으로 체계를 갖춘 족보로 만든 것이 세상에서 일컫는 이권보(二卷譜)라는 것이다. 그 뒤 편집자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사권보(四卷譜)가 조선 후기에 간행된 바 있으며 1887 년(丁亥)에 입재(立齋) 문헌공(文獻公) 근수(近洙)와 나주공(羅州公) 정희(正熙)가 함께 간행한 이른바 정해대보(丁亥大譜)라는『은진송씨보(恩津宋氏譜)』가 있다. 1966년에 총 2,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은진송씨대동보(恩津宋氏大同譜)가 건(乾), 곤(坤)의 두 책으로 병덕(秉德)의 책임편집 아래 간행되는 등 은진송씨 문중에서는 모두 네 권의 족보를 간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