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송씨 상대세적

4-2. 덕을 숨기고 벼슬을 단념한 처사 쌍청당
221.158.221.★

덕을 숨기고 벼슬을 단념한 처사 쌍청당

묘표 음기

구표 후면에 없어지지 않은 것은“젊어서 무사(無事)를 좋아하고 재명(才名)이 뛰어나며 벼슬을 기꺼이 하지 않고 병으로 임천(林泉)122)에 계시다가 나이 58세에 하세하였다.” 라 고 있고, “부도(婦道)가 있으며 37세에 하세하였다.”라고 있고, “처음에는 양성(陽城)에 장례 지냈다가 지금은 여기에 옮겼다.”라고 있고, “정통 12년 정묘(세종 29, 1447) 4월 일”이라고 있다. 이 수십 자(數十字)는 우리 부군과 부인의 사적의 처음과 끝을 읽을 수 있어 대강[隱約]123)은 가히 증거할 수 있다.

아! 우리 부군의 높은 풍도와 맑은 지조는 족히 세상을 착하게 하고 풍속을 일깨울 수 있으며 음덕이 쌓여 자손을 넉넉히 하고 후세를 빛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자손이 번창하여 명현과 귀하게 된 사람이 남은 법도를 나타낸 자가 많으니 가히 훌륭하다고 할 것이다. 하물며 지금 주상 전하와 왕비 전하께서 다 우리 부군의 외예[外孫]인 즉 영지(靈芝)124)와 예천(醴泉)125)이 어찌 근원이 없으리오. 김문정공[尙憲]이 이 사실을 비석에 실어 발휘하여 남음이 없으되 유독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지은 것이 먼저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감히 추급하여 전(篆)을 써서 아름다운 빛을 천명하니 백세후에 이 글을 보는 자는 국내를 보호함이 있을진저! 비석은 정방(丁方)126) 수십보에 있다. 아울러 안팎자손을 뒤에 기록하였으니 대략 여기에서 가히 상고할 수 있을 것이다.
숭정 갑진년(현종 5, 1664) 정월 일. 8대손 시열 지음

墓表陰記

舊表未滅者有曰少好無事才名超群不喜仕帶疾林泉年五十八卒有曰有婦道年三十七卒有曰初葬陽城今遷于此有曰正統十二年丁卯四月日此數十字尙可讀我府君夫人事行始卒隱約可徵矣嗚呼我府君高風淸節足以善世警俗其潛懿秘積足以裕昆燾後故子孫蕃衍名賢鉅公式彰 餘矩者亦累累可謂盛矣 今我 主上殿下 王妃殿下皆系我府君外裔則靈芝醴泉夫豈無本源 哉 金文正公載事于碣發輝無餘而獨於此未及者其作在先也今敢追篆于此畢闡休光百世之 後 觀此文者 尙有以護斯丘哉碣石 在丁方數十步幷記內外子孫于後大略斯可攷也 崇禎甲辰正月 日 八代孫 時烈 撰

묘표 자손기

공의 배위는 안인(安人) 안동손씨(安東孫氏)인데, 지중추부사 원유(元裕)의 따님이요, 좌대언(左代言) 득수(得壽)의 손녀이며 직성군(直城君) 시호(諡號) 정평공(靖平公) 홍량 (弘亮)의 증손녀이다. 三十七세에 하세하였다. 처음 양성(陽城) 땅에 장례 지냈다가 공 의 장례 때 왼쪽에 옮겨 합장하였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 계사(繼祀)는 상주 판관을 지냈고 증직은 사헌부 지평이다. 차남 계중(繼中)은 사과(司果)이다. 정 요년(遙年), 정랑 순년(順年), 별좌 미년(眉年), 호년(胡年), 생원 홍상(洪湘), 생원 정변(鄭忭)은 공의 손자 항렬이다.

군수 여림(汝霖), 선무랑 여집(汝楫), 부사 여해(汝諧), 진사 여익(汝翼), 생원 여려(汝礪) 여우(汝雨), 여화(汝和), 여주(汝舟), 여필(汝弼), 여좌(汝佐), 우의정 강구손(姜龜孫), 교리 박계간(朴季幹),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송구몽(宋龜蒙) 등 25명은 공의 증손항렬이다.

군수 세훈(世勛), 세적(世勣), 생원 세감(世勘), 세근(世勤), 증 집의 세면(世勉), 첨사 세욱(世勖), 군수 세경(世勁), 승중(承重), 군수 세협(世協), 승사랑 세영(世英), 판관 세 웅(世雄), 군수 세충(世忠), 참봉 세량(世良), 세일(世一), 현감 세평(世平), 세흠(世欽), 세양(世讓), 세겸(世謙), 세심(世諶), 세전(世銓), 세간(世諫) 세룡(世龍), 별좌 윤백령(尹百齡), 판서 김정(金淨), 현령 박조(朴稠), 주부 정노겸(鄭勞謙), 정 정익겸(鄭益謙), 부사 정복겸(鄭福謙) 노세보(盧世輔), 등 63명을 공의 현손항렬이다.


쌍청당 묘표 자손기 : 족보를 돌에 새긴 우리나라 최초의 비석
「쌍청당송유묘표」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65호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산소골

군수 남수(枏壽), 현감 계수(桂壽), 백수(栢壽), 화수(樺壽), 형(珩), 감(瑊), 인(璘), 관(瓘), 기(琦), 종(琮), 침(琛), 군수 선(璿), 호(瑚), 연(璉), 숙(琡), 증 승지 영(玲), 정(珽), 구(球), 박(珀), 별좌 응상(應祥), 군수 응서(應瑞), 응생(應生), 군수 응수(應秀), 참찬 기수(麒壽), 봉사 귀수(龜壽), 대사헌127) 인수(麟壽), 사의 봉수(鳳壽), 안국(安國), 억달(億達), 충상(忠祥), 자경(自敬), 자평(自平), 충정(忠貞), 인수(仁壽), 만호128) 의수(義壽), 예수(禮壽), 황생(黃生), 용수(龍壽), 조대승(曹大勝), 윤기정(尹起禎), 진사 박의(朴毅), 이부열(李傅說), 곽어(郭語), 정식(鄭栻), 길정지(吉挺之), 참의 홍천민(洪天民), 첨지 이정현(李廷縣), 병사129) 김경원(金慶元), 정랑 정기(鄭耆), 찬성 정응두(丁應斗), 현감 성제원(成悌元), 판서 유강(兪絳), 찬성 박영준(朴永俊), 좌의정 정유길(鄭惟吉), 김근공(金謹恭) 등 140여 명은 공의 5대손 항렬이다.

학유130) 희원(希遠), 판관 희건(希建), 장령131) 희록(希祿), 진사 희득(希得), 첨지 희명(希命), 사창(嗣昌), 영창(永昌), 흥문(興門), 증 참판 몽인(夢寅), 의창(義昌), 석창(錫昌), 철창(哲昌), 주부 희경(希慶), 진사 문창(文昌), 진사 계창(啓昌), 군수 이창(爾昌), 하창(賀昌), 경창(慶昌), 대사간 응개(應漑), 목사 응형(應泂), 부제학 응순(應洵), 도사 응기(應期), 현령132) 응광(應光), 응경(應慶), 응학(應鶴), 응란(應鸞), 정준(廷俊), 정영(廷英),응종(應宗), 천기(天機), 천계(天桂), 천주(天柱), 희창(希昌), 희소(希紹), 희상(希祥), 희복(希福), 희길(希吉), 희순(希醇), 희철(希哲), 희달(希達), 개(凱), 윤창(胤昌), 희갑(希甲), 희열(希說), 응눌(應訥), 응징(應澂), 응준(應浚), 응렴(應濂), 귀현(貴賢), 판서 이명(李溟), 증 찬성 김광유(金光裕), 승지 강홍중(姜弘重), 한림 이정(李瀞), 평사133) 박간(朴衎), 찰방134) 이빈(李賓), 이분(李蕡), 이신(李藎), 동지 이천(李蕆), 부제학 신응시(申應時), 현감 이치(李錙), 교관135) 조원개(趙元凱), 참봉 김결(金潔), 황준남(黃俊男), 현감 심업(沈嶪), 한상(韓瑺), 교리 김첨(金瞻), 부사 유대수(兪大修), 참판 윤인함(尹仁涵), 감사 정윤희(丁胤禧), 참판 정윤복(丁胤福), 판서 윤자신(尹自新), 감사 윤희길(尹希吉), 지사136) 이정암(李廷馣), 봉성군 완(鳳城君 岏), 우의정 정지연(鄭芝衍), 참찬 성혼(成渾), 참의 이해수(李海壽), 판서 강신(姜紳), 영돈령137) 류자신(柳自新), 동돈령138) 김극효(金克孝), 죄의정 정창연(鄭昌衍), 이종길(李宗吉), 박흥남(朴興男), 진사 민경남(閔敬男), 생원 박희성(朴希聖), 군수 김덕해(金德海), 감찰 박홍우(朴弘佑) 등 400여 명은 공의 6대손 항렬이다.
국전(國銓), 국돈(國焞), 생원 국시(國蓍), 생원 국보(國輔), 국귀(國龜), 생원 국신(國藎), 정언139) 몽석(夢錫), 부시 국준(國準), 국진(國鎭), 국강(國綱), 부윤 국택(國澤), 국정(國鼎), 국사(國士), 국헌(國憲), 익(翊), 습(習), 핵(翮), 흡(翕), 한(翰), 굉(翃), 치원(致遠),여원(慮遠), 내원(來遠), 필원(必遠), 문우(文祐), 문희(文禧), 국로(國老), 유록(綏祿), 희남(喜男), 생원 승길(承吉), 용길(龍吉), 이길(以吉), 유길(惟吉), 집의 준길(浚吉), 인길(寅吉), 호길(虎吉), 현령 계록(啓祿), 직장 흥조(興祚), 현감 경조(敬祚), 군수 영조(榮祚), 군수 유조(裕祚), 판결사140) 석조(碩祚), 현감 효조(孝祚), 별좌 현조(顯祚), 흠조(欽祚), 현감 승조(承祚), 좌랑 방조(邦祚), 봉사 갑조(甲祚), 부장141) 순조(純祚), 감찰 정조(廷祚), 전첨142) 희조(熙祚), 원조(元祚), 봉사 광조(光祚), 담조(覃祚), 연조(演祚), 계조(啓祚), 이조(履祚), 경립(慶立), 의립(義立), 국주(國柱), 국첨(國瞻), 흥길(興吉), 효길(孝吉), 수장(壽長), 국한(國翰), 익조(益祚), 명조(命祚), 사립(斯立), 극립(克立), 예립(禮立), 효립(孝立), 국설(國薛), 부윤143) 이민수(李敏樹), 집의 심로(沈로), 부윤 소동도(蘇東道), 감사 김경여(金慶餘), 참봉 이의길(李義吉), 부사 노협(盧協), 교리 정두경(鄭斗卿), 현감 박축(朴軸), 도사 박로(朴輅), 참봉 곽현(郭鉉), 판서 이시발(李時發), 현감 이덕배(李德培), 장령 지덕해(池德海), 경력 이성징(李星徵), 현감 심서(沈서), 장령 조익(趙翊), 장령 이시직(李時稷), 현감 이시상(李時尙), 감사 홍득일(洪得一), 정언 유학증(兪學曾), 군수 김해(金垓), 참판 윤흔(尹昕), 정자144) 황석(黃奭), 현감 이덕언(李德言), 현감 성문준(成文濬), 참판 윤수민(尹壽民), 감찰 박안건(朴安建), 영의정 신흠(申欽), 참판 신감(申鑑), 저작145) 김성립(金誠立), 판서 이경전(李慶全), 감사 정호선(丁好善), 병사 정호서(丁好恕), 군수 박경심(朴慶深), 호군 김호덕(金好德), 참판 이정형(李廷馨), 참판 남이신(南以信), 참판 이상신(李尙信), 판서 심충겸(沈忠謙), 대사헌 김덕함(金德諴), 대사간 윤황(尹煌), 첨정 이춘영(李春英), 통제사146) 원수신(元守身), 우의정 김상용(金尙容), 좌의정 김상헌(金尙憲), 참의 김상복(金尙宓), 참판 정광성(鄭廣成), 참판 정광경(鄭廣敬), 정자 한준(韓峻), 사부 신석번(申碩蕃), 현감 김진현(金震賢) 등 700여 명은 공의 7대손 항렬이다.

규연(圭淵), 규하(奎河), 생원 규렴(奎濂), 규태(奎泰), 규복(奎復), 규정(奎禎), 규상(奎 祥), 지렴(之濂), 지하(之河), 지락(之洛), 규응(奎應), 규징(奎徵), 규정(奎精), 규영(奎 英), 규광(奎光), 규휘(奎輝), 규장(奎章), 규명(奎明), 규회(奎會), 규보(奎報), 생원 정렴(挺濂), 정락(挺洛), 생원 정속(挺涑), 정화(挺華), 정민(挺閩), 정현(挺賢), 정호(挺豪), 정준(挺浚), 정엄(挺淹), 정부(挺溥), 정침(挺沉), 시태(時泰), 시중(時中), 시정(時程), 시윤(時尹), 시양(時楊), 시주(時周), 시범(時范), 시형(時亨), 시현(時顯), 광주(光柱), 광추(光樞), 광두(光枓), 광식(光 ), 증 지평 시승(時昇), 진사 시언(時彦), 시행(時行), 참판 석경(錫慶), 석로(錫老), 도사 석몽(錫夢), 장령 석윤(錫胤), 진사 석규(錫圭), 생원 석명(錫命), 진사 석홍(錫洪), 석귀(錫龜), 승현(承賢), 진사 석복(錫福), 현감 시혁(時爀), 주부 시영(時榮), 사부 시형(時瑩), 시염(時琰), 시담(時倓), 찰방 시묵(時默), 집의 시열(時烈), 시도(時燾), 시걸(時杰), 시엽(時燁), 직장147) 시욱(時煜), 시일(時逸), 시옹(時雍), 시재(時載), 시정(時鼎), 시헌(時憲), 시관(時寬), 광석(光晳), 광억(光億), 이흥(以興), 시흥(時興), 재흥(再興), 내흥(乃興), 시령(時寧), 시길(時吉), 시회(時誨), 시간(時簡), 시관(時瓘), 시준(時準), 시달(時達), 시로(時老), 참의 남노성(南老星), 참봉 김곤원(金坤遠), 찰방 이선(李愃), 찰방 이경(李憬), 동양위 신익성(申翊聖) 유수148) 신익전(申翊全), 감사 신익량(申翊亮), 시직 신익륭(申翊隆), 참판 조계원(趙啓遠), 부사 박호(朴濠), 강문성(姜文星), 감사 홍명구(洪命耉), 승지 이지항(李之恒), 지평 이무(李袤), 지평 노문한(盧文漢), 현감 윤유진(尹惟晉), 부사 이유겸(李有謙), 도사 김연(金渷), 현감 윤순거(尹舜擧), 시직 윤상거(尹商擧), 승지 윤문거(尹文擧), 사부 윤선거(尹宣擧), 현감 권준(權儁), 사간149) 홍처량(洪處亮), 승지 김진(金振), 판서 권반(權盼), 사인 권흔(權訢), 영의정 심열(沈悅), 정 김광환(金光煥), 우의정 장유(張維), 호군150) 김광찬(金光燦), 영의정 정태화(鄭太和), 참판 정치화(鄭致和), 감사 정지화(鄭知和), 군수 김익렬(金益烈), 대사간 이시해(李時楷), 참판 이시매(李時楳), 집의 윤집(尹集), 교리 오달제(吳達濟), 참의 정언황(丁彦璜),수찬 정언벽(丁彦璧), 정언 심구(沈玖), 부솔 김우명(金佑明), 참의 남두첨(南斗瞻), 대사성 신민일(申敏一), 참의 이성신(李省身), 판서 김세렴(金世濂), 장령 정백형(鄭百亨), 정랑 송도남(宋圖南), 봉사 조익남(趙翼男), 장령 이성항(李性恒) 등 수천여 명은 공의 8대손 항렬이다.

득필(得弼), 명필(明弼), 원필(元弼), 명신(命新), 덕신(德新), 일신(日新), 도신(道新), 유관(有觀), 유징(有徵), 좌랑 지혼(之渾), 지명(之明), 지한(之翰), 진사 지덕(之德), 지징(之徵), 지찬(之瓚), 지빈(之彬), 지기(之琦), 지원(之瑗), 진사 지항(之沆), 지규(之奎), 참봉 기륭(基隆), 기후(基厚), 기현(基顯), 기선(基善), 기태(基泰), 기명(基明), 기학(基學), 기덕(基德), 상검(尙儉), 상검(尙敏), 판관 황부(黃裒), 교리 유계(兪棨), 감사 남훤(南훤), 영의정 이성구(李聖求), 찬성 이덕형(李德泂), 현감 김수홍(金壽弘), 현감 김수인(金壽仁), 군수 김수창(金壽昌), 세마151) 김수증(金壽增), 사서152) 김수항(金壽恒), 부사 홍중보(洪重普), 정언 조진석(趙晉錫), 한림 조귀석(趙龜錫), 정언 신상(申恦), 집의 이재(李梓), 지평 이항(李杭), 청성군 심정화(沈廷和) 등 수천여 명은 공의 9대손 항렬이다.

도사 인식(仁植), 도흥(道興), 도창(道昌), 도제(道濟), 도응(道凝), 도장(道章), 도익(道 翼), 도장(道長), 원석(元錫), 수찬 김시진(金始振), 정자 김익진(金益振) 등 수천여 명은 공의 10대손 항렬이다. 파가 멀고 나타나지 않은 사람과 미성년자는 다 싣지 않는다. 7대손 준길은 삼가 기록하고 아울러 쓰다.

墓表 子孫記

公配 安人 安東孫氏 知中樞府事 元裕之女 左代言 得壽之孫 直城君 諡靖平公洪亮之曾孫三十七歲而沒 初 于陽城地 及公之葬也 遷 于左 生二男 長曰 繼祀 尙州判官 贈司憲府 持平 次曰 繼中 司果 曰 正 遙年 正郞順年…… (이하 자손록은 번역문 참조)
……曰 都事 仁植 道興 道昌 道濟 道凝 道章 道翼 道長 元錫 修撰 金始振 正字 金益振等
數千餘 公之十代孫行也 派遠而不顯者 若未冠 者 皆不載
七代孫 浚吉 謹記 竝書

『은진송씨선적사(恩津宋氏先蹟史)』153)에 보면, 위의“자손기(子孫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편집자154) 임의로 내용은 가감한다. 자손기에 수록된 수를 대수(代數) 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고 하여 정리하였다.

1. 쌍청당
2. 쌍청당 자제 2명
3. 쌍청당 손항 6명
4. 쌍청당 증손항 25명
5. 쌍청당 현손항 63명
6. 쌍청당 5대손 항렬 140여 명
7. 쌍청당 6대손 항렬 700여 명
8. 쌍청당 7대손 항렬 수천여 명
9. 쌍청당 8대손 항렬 수천여 명
10. 쌍청당 9대손 항렬 수천여 명
11. 쌍청당 10대손 항렬 수천여 명

1) 6대 쌍청당 : 유(愉)
유(愉) : 호 쌍청당(雙淸堂)
배(配) : 안동손씨(安東孫氏)
—부 : 원유(元裕)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일직군(一直君)
—조 : 좌대언(左代言)
—증조 : 직성군(直城君) 시 정평(諡 靖平)

2) 쌍청당 자제
계사(繼祀) : 2남
—상주판관 증 지평
—배(配) : 순천김씨(順天金氏—공인(恭人))
계중(繼中) : 2남 2녀
—사직(司直)
—배(配) : 안동권씨(安東權氏—공인(恭人))

3) 쌍청당 손항 : 年자 항렬 6명
계사(繼祀)
—장남 요년(遙年), 군자감 정(軍資監 正)
—차남 순년(順年), 예조 정랑(禮曹 正郞)
계중(繼中)
—장남 미년(眉年), 별좌(別坐)
—차남 호년(胡年)
—장녀 홍상(洪湘), 생원(生員)
—차녀 정변(鄭抃), 생원(生員)

4) 쌍청당 증손항 : 汝자 항렬 25명

요년 : 2남 1녀
—장남 여림(汝霖), 군수(郡守)
—차남 여집(汝楫), 선무랑(宣務郞)
—여 강구손(姜龜孫), 우의정(右議政)

순년 : 3남 2녀
—장남 여해(汝諧), 부사(府使)
—차남 여익(汝翼), 진사(進士)
—삼남 여려(汝礪), 생원(生員)
—장녀 박계간(朴季幹), 교리(校理)
—차녀 정광필(鄭光弼), 영의정(領議政)

미년 : 3남 2녀
—장남 여우(汝雨)
—차남 여화(汝和)
—삼남 여주(汝舟)
—장녀 이제손(李悌孫)
—차녀 우윤공(禹允功)

호년 : 2남 2녀
—장남 여필(汝弼)
—차남 여좌(汝佐)
—장녀 홍순손(洪順孫)
—차녀 정수장(鄭壽長)
—홍상 : 4녀
·장녀 최중온(崔衆溫)

·차녀 정보(鄭堡)
·삼녀 박숙(朴塾)
·사녀 송구몽(宋龜夢)
—정변 : 1남 3녀
·장남 윤경(潤慶)
·장녀 윤삼계(尹三繼), 부사(府使)
·차녀 홍득종(洪得宗)
·삼녀 윤사임(尹思任)

5) 쌍청당의 현손항 : 世자 항렬 63명
여림 : 9남
—장남 세훈(世勛), 군수(郡守)
—차남 세적(世勣), 충순위(忠順衛)
—삼남 세감(世勘), 생원(生員)
—사남 세근(世勤), 통정대부
—오남 세면(世勉), 증 집의(贈 執義)
—육남 세욱(世勗), 첨사(僉使)
—칠남 세경(世勁), 군수(郡守)
—팔남 승중(承重), 양자로 나감
—구남 세협(世協), 군수(郡守)

여집 : 2남
—장남 세영(世英), 승사랑(承仕郞)
—차남 세웅(世雄), 판관(判官)
—강구손 : 1남(요년의 사위)
—장남 강태수(姜台壽), 부사(府使)

여해 : 2남 2녀
—장남 세충(世忠), 군수(郡守)
—차남 세량(世良), 참봉(參奉)
—장녀 윤백령(尹百齡), 별좌(別坐)
—차녀 황세건(黃世建)

여익 : 1남 3녀
—장남 세일(世一), 참봉(參奉)
—장녀 윤 추(尹 樞), 현감(縣監)
—차녀 임세창(林世昌), 참봉(參奉)
—삼녀 김정(金淨), 판서(判書)

여려 : 1남 4녀
—장남 세평(世平), 현감(縣監)
—장녀 길대수(吉大樹)
—차녀 박연령(朴延齡)
—삼녀 손천령(孫千齡)
—사녀 최운(崔澐), 현감(縣監)
—박계간 : 1남
·장남 박조(朴稠)
—정광필 : 4남
·장남 정노겸(鄭勞謙), 주부(主簿)
·차남 정위겸(鄭 謙), 현령(縣令)
·삼남 정익겸(鄭益謙), 정(正)
·사남 정복겸(鄭福謙), 부사(府使)
*정노겸의 손자 지연(芝衍)은 우의정이고 외손자 성혼(成渾)은 문묘에 배향되었다.
*정복겸의 아들 유길(惟吉)은 좌의정이고, 그 외손자 김상용(金尙容)은 우의정이며 장 유(張維)는 상용의 사위인데 우의정이다.

여우 : 1남 2녀
—장남 세흠(世欽), 참봉(參奉)
—장녀 하영징(河永澄)

여화 : 1남
—남 승중(承重) : 생부 여림(汝霖)

여주 : 5남 1녀
—장남 세양(世讓)
—차남 세겸(世謙)
—삼남 세심(世諶)
—사남 세전(世銓)
—오남 세간(世諫)
—장녀 성호(成浩)

여필 : 1녀
—장녀 양희(楊熙)

여좌 : 1남
—장남 세룡(世龍)
·홍순손 : 2남
·정수장
·노세보

6) 쌍청당 5대 손항 : 壽자 항렬 140여 명
[편집자 주]
본손은 수가 너무 많아 열거하지 않고 계통의 이해가 어려운 저명한 외손만 기록한다.

홍천민(洪天民)
—참의 대사간. 청풍공 세경(世勁)의 사위
이정현(李廷顯)
—군수. 증참판. 승사랑 세영(世英)의 사위 이시직(李時稷)은 그의 손자이다.

정응두(丁應斗)
—가평공 세충(世忠)의 사위. 찬성 옥형(玉亨)의 아들. 좌찬성. 판의금부사. 시호 충정 (忠靖).

박영준(朴永俊)
—정랑공 사위인 박계간(朴季幹)의 손자. 찬성(贊成)

정유길(鄭惟吉)
—정랑공의 사위인 정광필(鄭光弼)의 손자. 좌의정(左議政)

성제원(成悌元)
—참봉공 세량(世良)의 사위 호 동주(東洲). 부사 몽선(夢宣)의 아들. 성리학자. 증제 학. 공주 충현서원(忠賢書院), 보은 상현서원(象賢書院)에 배향 시호 청헌(淸憲).

7) 쌍청당 8대 손항 : 希·昌·應자 항렬 400여 명
이명(李溟)
—송담(松潭 : 남수)의 사위. 판서. 지중추부사. 부사. 물가안정에 기여함.

김광유(金光裕)
—송담의 사위. 진사. 증 좌찬성. 송애 김경여의 아버지.

강홍중(姜弘重)
—안악공(安岳公 世勛)의 사위인 윤기정의 사위. 감사.

신응시(申應時)
—승사랑공(承仕郞公 世英)의 손자사위. 동춘당 고모부. 호 백록(白麓). 문과 부제학.

윤인함(尹仁涵)
—가평공(加平公 世忠)의 사위인 정응두의 사위. 문과 형조참판. 문장과 그림에 능함.

정윤희(丁胤禧)
—정응두의 아들. 문과급제. 감사.

정윤복(丁胤福)
—정응두의 아들. 문과급제. 부제학.

윤자신(尹自新)
—안동공(安東公 汝諧)의 사위인 윤백령의 외손서. 공조·판서·지중추부사.

윤희길(尹希吉)
—안동공 사위인 윤백령의 손자. 감사

봉선군 완(鳳善君 岏)
—정랑공의 사위인 정광필의 손자사위. 중종 왕자.

정지연(鄭芝衍)
—정랑공의 사위인 정광필의 증손. 문과급제. 우의정.

성혼(成渾)
—정지연의 매제. 찬성. 호 우계(牛溪)

이해수(李海壽)
—정광필의 아들인 익겸(益謙)의 손자사위. 문과급제. 참의.

강신(姜紳)
—정익겸의 손자사위. 문과급제. 판서. 판중추부사. 호 동고(東皐). 우의정 사상(士尙) 의 아들.

류자신(柳自新)
—정랑공의 외손서인 정유길의 사위. 광해군의 장인.

김극효(金克孝)
—정유길의 사위. 동돈령(同敦寧). 선원 김상용(仙源 金尙容)의 아버지.

정창연(鄭昌衍)
—정유길의 아들. 문과급제. 좌의정. 광해군의 비 류씨(류자신의 딸)는 생질녀이다.

8) 쌍청당의 7대 손항 : 國·遠·吉·綠·祚·立자 항렬. 700여 명.

이민수(李敏樹)
—송담(松潭 : 남수)의 사위인 이명의 아들. 문과급제. 부윤. 참의.

소동도(蘇東道)
—삼가공 자제인 희건(希建 : 安東公)의 사위. 감사.

김경여(金慶餘)
—송담의 사위인 김광유(金光裕)의 아들. 호 송애(松崖). 감사. 부제학.

이의길(李義吉)
—참판공(參判公 樺壽)의 외손자. 참판공 묘표를 지음. 참봉.

정두경(鄭斗卿)
—안악공(安岳公 世勛)의 사위인 윤기정(첨정)의 사위인 강홍중(姜弘重, 감사)의 사 위. 호 동명(東溟). 참판.시문과 서예에 뛰어났다.

이시발(李時發)
—집의공(執義公 世勉)의 여 박관(朴寬)의 여 민경남(閔敬男 : 진사)의 여 이시발. 문 과급제. 판서.

지덕해(池德海)
—첨사공(僉使公 世 의 손자사위인 지경청(池景淸)의 아들. 문과급제. 장령.

조익(趙翊)
—승사랑공(承仕郞公 世英)의 사위인 이정현(증참판)의 손자사위. 문과급제. 장령.

이시직(李時稷)
—승사랑공의 사위인 이정현의 손자. 호 죽창(竹窓). 문과급제. 장령. 병자호란 때 강 화도에서 자결. 증 판서. 시호 충목(忠穆). 숭현서원에 배향.

윤흔(尹昕)
—승사랑공의 손자사위인 신응시(辛應時)의 사위. 동춘당 고종매부. 문과급제. 참판. 황석(黃奭)
—판관공(判官公 世雄)의 손자인 경창(慶昌 : 선교랑. 효자 정려)의 생질. 문과급제. 정자. 증 사간.

윤수민(尹壽民)
—추파공(秋坡公 麒壽)의 외손서. 문과급제. 참판.

신흠(申欽)
—추파공의 외손자. 호 상촌(象村). 영의정. 시호 문정(文貞).

신감(申鑑)
—신흠의 아우. 문과급제. 참판.

이경전(李慶全)
—추파공 외손서. 교리 이첨(李瞻)의 아들. 문과급제. 판서.

정호선(丁好善)
—가평공(世忠) 사위 정응두 손자. 윤복의 아들. 문과. 감사.

정호서(丁好恕)
—정호선의 아우. 병사(兵使).

김호덕(金好德)
—참봉공(世良)의 귀수(龜壽)의 응기(應期)의 여 김호덕. 호군(護軍).

이정형(李廷馨)
—규암공(麟壽) 손자 사위. 참판.

남이신(南以信)
—가평공 사위인 정응두의 손자사위. 부제학. 유복의 사위.

이상신(李尙信)
—추파공의 외손서. 문과급제. 참판.

심충겸(沈忠謙)
—정랑공의 정광필의 정노겸(주부)의 여 봉성군의 여 심충겸. 문과급제. 판서.

윤황(尹煌)
—정랑공의 여 정광필의 손 정유인(鄭惟仁)의 여 성혼(成渾)의 윤황. 호 팔송(八松) 시 호 문정(文正).

김상용(金尙容)
정랑공의 여 정광필의 자 정복겸의 자 정유길의 사위 극효(克孝)의 아들.

김상헌(金尙憲)
—안동공(汝諧)의 여 윤백령의 자 윤항(尹沆)의 여 보청 정 억립(甫川 億立)의 여 김대 효(金大孝)의 자 김상헌. 좌의정. 상용의 아우.

김상필(金尙宓)
—상헌의 아우

9) 쌍청당 8대 손항: 奎·時·挺·錫자 항렬 수1,000여 명

신익성(申翊聖)
—신흠의 아들. 동양위(東陽尉).

신익전(申翊全)
—신흠의 아들. 문과급제. 참판.

신익량(申翊亮)
—신감(신흠의 아우)의 아들. 문과급제. 감사.

조계원(趙啓遠)
—심흠의 사위. 문과급제. 판서.

홍명구(洪命耉)
—신간의 사위. 문과급제. 감사.

윤순거(尹舜擧)
—윤황의 아들. 장령. 호 동토(童土). 수(燧)에게 입양.

윤문거(尹文擧)
—윤황의 아들. 이조참의. 호 석호(石湖).시호 충경(忠敬).

윤선거(尹宣擧)
—윤황의 아들. 증(拯)의 아버지. 집의(執義). 호 미촌(美村). 시호 문경(文敬).

장유(張維)
—정랑공의 여 정광필의 자 정복겸의 자 정유길의 사위 장유.

김극효(金克孝)
—자 김상용의 여 장유. 우의정.

김우명(金佑明)
—사우당(四友堂 : 國澤)의 사위. 청풍부원군. 따님이 현종비 명성왕후이다.

묘표 추기

부군이 하세한 지 250년이 되던 1695년(숙종 21)에 비풍(比豊)155)의 선비들이 부군의 풍의(風誼 또는 風義)1556)를 사모하여 사우를 세워서 제향을 받드니 심히 성대한 거사다. 그러나 이 거사가 묘표를 지은 뒤에 있었기 때문에 미처 표문에 싣지 못했다. 후세에 부군 산소를 참배하고 표문을 보는 사람이 어찌 그 전말을 알겠는가? 여러 일 가들이 이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장차 표문을 다른 돌에 옮겨 새기려 하매 불초에게 추기 쓸 것을 명하였다. 사우의 이름은 정절사(靖節祠)다. 18대손 시영 지음

墓表追記

府君旣沒之二百五十年 肅宗乙亥比豊章甫慕府君風誼立祠薦俎豆甚盛擧然此擧在表成後 未及載表文世之拜府君墓而覽表文者其何能考據顚末耶諸宗姓庸是爲憾將移刻表文于他石命不肖追記祠名卽靖節也 十八代孫 始永 撰

판교사적비(板橋事蹟碑)

이곳은 우암선생(尤菴先生)께서 만년에 종신모부모(終身慕父母)하시는 심정으로 첨 배재(瞻拜齋)를 짓고 기거(起居)하시던 자리로써 이후 세인(世人)들은 고개도 첨배재 (瞻拜峙)라고 불러 왔다.

선생은 50세 되시던 해에 고비(考妣)의 산소(山所)를 쌍청당 묘하(雙淸堂 墓下)에 면 봉(緬奉)해드리면서 묘비(墓碑)도 함께 세우는 한편 후손(後孫)들에게 산소의 위치를 알리는 이 지점석(地點石)을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의 글씨로 길 건너편에 세웠다.


판교사적비(板橋事蹟碑)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산소골

최근에 지형의 변동으로 아래편으로 옮겼으나 자리가 마땅치 않아 송자종중공사원(宋 子宗中公司員) 필헌(弼憲)의 주선으로 2005년 4월에 다시 이 자리에 옮겨 세웠다. 이 과정에서 운호(運鎬)가 선고(先考)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금 200만원을 기탁(寄託)함으로써 이 사업에 조용(助用)했다. 선생의 59세 때 아드님의 추운(推恩)으로 수옹공(睡翁公)께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 (追贈)됨으로써 이듬해 3월에 묘소의 건방(乾方)에다 신도비(神道碑)를 세우고, 81세 때는 쌍청당(雙淸堂)의 비(碑)도 수옹공(睡翁公)의 신도비(神道碑) 위쪽 언덕에 옮겨 세웠다. 당시에 선생은 사력(事力)이 모자라 신도비(神道碑)의 좌대(座臺)를 다듬지 못한 채 자연석(自然石) 위에다 비신(碑身)을 세웠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후 좌대를 바꿀 수 없어 비(碑)의 갓을 하나 더 올려 지금처럼 이중(二重)의 갓으로 만들어 추모의 정을 더한 것으로 보아지니 이것으로도 선생의 효심(孝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 지형(地形)의 변동으로 그 묘비(墓碑)와 신도비(神道碑)가 수년간 방치되었으나, 당시 종중 공사원 병호(秉昊)와 수옹공종중부공사원(睡翁公宗中副公司員) 재각(在珏) 등이 현위치(現位置)로 이수(移竪)하면서 당초 선생의 심법(心法) 대로 쌍청당(雙淸堂)의 비(碑)를 한 단(壇) 위에 모시고 수옹공(睡翁公)의 신도비(神道碑)와 추비(追碑)는 예법(禮法)에 따라 단하(壇下)에 모시었다. 이 일련의 이수사업(移竪事業)들은 모두 우리 큰댁 사손(嗣孫) 영달(永達)의 발의(發議)로 이루어졌다.

이렇듯 산소골로 세칭(世稱)되는 이곳 판교(板橋)는 우리 선대의 산소가 모셔진 성역 (聖域)이자 선생의 효심이 서린 사적지(事蹟地)이기에 종중(宗中)의 중론(衆論)에 따라 불초손(不肖孫) 백헌(百憲)이 여기 그 대강(大綱)의 사실(事實)을 기술(記述)하노니 자 손(子孫) 된 자 마땅히 선생의 출천(出天)한 효심(孝心)을 효칙(效則)하여야 할 것이다. 단기4338년 8월 일

주석

  • 122) 임천(林泉) : 은사(隱士)의 정원을 일컫는 말, 혹은 산과 들의 한적한 경치를 이르는 말.
  • 123) 은약(隱約) : 확실치 못하고 대강만 짐작함.
  • 124) 영지(靈芝) : 고목에서 나는 버섯. 서초(瑞草). 계지(桂芝). 지초(芝草). 높이가 10미터 가량이고 전체가 가죽 모양의 코르크질(質)로서 단단함. 산속 넓은잎나무의 썩은 그루터기에서 나는데 옛날에는 복초(福草)라고 하여 성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 125) 예천(醴泉) : 단맛이 나는 물이 솟아난다고 하는 샘(甘泉). 예로부터 상서가 있음을 말함. 때로 단비가 내려 만물이 아름다워지나니 예천이라 한다(甘雨時降 萬物以嘉 謂之醴泉)[爾雅 釋天].
  • 126) 정방(丁方) : 24방위의 하나. 정남에서 서로 15도를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의 범위. 오방(午方)과 미방(未方)의 사이. 또는 남남서와 남미서(南微西) 사이.
  • 127) 대사헌(大司憲) : 고려, 조선 때 사헌부의 으뜸벼슬로 정2품임, 문무백관의 기강을 바로 잡고 임금의 잘못을 간하며 풍속을 바로 잡음. 달리 도헌(都憲), 또는 대헌(大憲)이라고도 함.
  • 128) 만호(萬戶) : 무관직의 하나. 조선 초에 각 도 여러 진(鎭)에 소속된 종4품의 군직(軍職)임.
  • 129) 병사(兵使) : 병마절도사. 조선조 때 각 지방에 두어 병마를 통솔 지휘하던 종2품의 무관.
  • 130) 학유(學諭) : 조선조 때 성균관의 종9품 벼슬. 정원은 3명이었음.
  • 131) 장령(掌令) : 조선조 때 사헌부의 정4품 벼슬.
  • 132) 현령(縣令) : 큰 현에 두었던 지방장관. 신라 때부터 두었고, 고려 때에는 대현(大縣)에 현령, 소현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조선조에 와서는 대현에 현령, 소현에 현감을 두었다. 품계는 종6품.
  • 133) 평사(評事) : 병마평사(兵馬評事). 조선조 때 정6품의 외직 무관. 그 전의 병마도사를 1466년(세조 12)에 이 이름으로 고쳤음.
  • 134) 찰방(察訪) : 조선조 때 각 도에 있는 역(驛)의 말에 관계되는 일을 맡아보던 외직 문관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종6품관임.
  • 135) 교관(敎官) : 조선조 때 동몽교관(童蒙敎官). 내시교관(內侍敎官)의 약칭. 전에는 동몽훈도(童蒙訓導)라 하여 사학(四學) 및 지방 읍의 향교에 교수(종6품) 훈도 등의 교육자를 두어 지방 자제들을 가르쳤는데 이 경우에도 교수를 교관이라 하였다.
  • 136) 지사(知事) : 조선조 때 지중추원사로 이르던 종2품 벼슬과 지합문사(知閤門事), 지사간원사 등으로 이르던 종3품 및 지문학부사, 지경연사, 지의금부사, 지성균관사, 지춘추관사, 지훈련원사 등으로 이르던 정2품 벼슬.
  • 137) 영돈령(領敦寧) : 영돈령부사.
  • 138) 동돈령(同敦寧) : 동돈령부사.
  • 139) 정언(正言) : 조선조 때 사간원에 속한 벼슬. 정원은 2명이고 품계는 정6품이었음.
  • 140) 판결사(判決事) : 장예원(掌隷院)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3품.
  • 141) 부장(部將) : 조선조 때 오위(五衛)의 종6품 무관 벼슬.
  • 142) 전첨(典籤) : 조선조 때 종친부(宗親府)에 딸려 정무를 맡아보던 정4품 벼슬.
  • 143) 부윤(府尹) : 조선조 때 문관의 지방 관직으로 부(府)의 장이다. 종2품 벼슬.
  • 144) 정자(正字) : 조선조 때 홍문관, 승문원, 교서관 등의 정9품 벼슬.
  • 145) 저작(著作) : 조선조 대 홍문관, 승문원, 교서관에 두었던 정8품 벼슬.
  • 146) 통재사(統制使) : 조선조 때 경상, 전라, 충청 등 3도의 수군을 통제하던 무관직. 일명 3도통제사라고도 한다.
  • 147) 직장(直長) : 조선조 때 종7품 벼슬. 봉상시, 종부시, 사옹원, 의금부, 상서원을 비롯한 30개 중앙 부서에 있었음.
  • 148) 유수(留守) : 임금을 대신하여 머물러 지킨다는 뜻으로 수도 이외에 주요한 곳을 맡아 다스리던 특수 외관직(外官職). 고려 때는 동경(東京 : 慶州), 서경(西京 : 平壤), 남경(南京 : 漢陽)의 3경에 두었고, 조선조 때에는 개성, 강화, 광주(廣州), 수원, 춘천에 두었으며 완산(完山 : 全州)에 일시적으로 두었다가 이내 폐지하였음. 품계는 정·종2품이었음. 거류(居留).
  • 149) 사간(司諫) : 조선조 때 사간원의 종3품 벼슬. 1466년(세조 12)에 지원사(知院事)로 이름을 고쳤음. 사간원은 삼사(三司)의 하나로 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보았는데 1402년(태조 2)에 설치하고 연산군 때 폐지하였다가 중종 때에 다시 설치하여 1894년(고종 31)까지 계속 되었음. 미원(薇院). 간원(諫院).
  • 150) 호군(護軍) : 조선조 때 오위(五衛)의 정4품 벼슬. 현직이 아닌 정4품의 문관, 무관, 음관 중에서 임명함.
  • 155) 비풍(比豊) : 회덕의 옛 이름
  • 156) 풍의(風儀) : 풍교의 모범이 되는 행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