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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3) 문충사 춘계제향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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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24-04-25

문충사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 73번길 44(용운동)에 있는 문충사(이사장 류종현)에서는 43(음력 225末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에서 온 유림과 관내 용동서원 서예반원이 참석하여 전 이사장 전재환씨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이사장 류종현씨의 인사말에 이어 춘향제가 엄숙하게 진행 되었다.

이날 초헌관에는 전남 장성 유림 김용숙(金容淑), 아헌관에는 전남 보성 유림 안규옥(安奎玉), 종헌관에는 경남 거창 유림 김영한(金永翰), 집례에 경남 거창 유림 김영석(金永奭), 축은 진잠향교 장의 강주성(姜稠聲) 봉향 ,봉노, 봉작, 전작, 알자, 사준, 직일, 제생 등 집사는 먼 곳에서 온 유림으로 분방하여 보람된 수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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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사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상소하고 일제의 국권 피탈에 자결한 연재 송병선을 주향으로 하고, 경술국치에 형 송병선을 따라 자결한 심석재 송병순 형제를 배향한 사우이다.

 

두 형제는 우암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후손으로 연재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에게 을사오적의 처단과 늑약 파기를 건의하였고, 그해 1230일 석촌정사에서 고종에게 국권회복을 호소하는유소(儒疏) : 유생들이 연명하여 올리던 상소)를 올린 후 독약을 마시고 순국했습니다.

 

동생인 심석재 송병순((宋秉珣, 1839~1912) 선생은 을사늑약(1905) 강제 체결 후 반대 투쟁과 함께 일제를 규탄하고 을사5적을 규탄하는 5적문을 지어 전국 유림에게 배포하고 궐기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 피탈을 당하자 1912년에 유서를 남기고 음독 순국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송병선 선생께 건국훈장 독립장(1962), 송병순 선생께도 건국훈장 독립장(1977)을 추서했습니다.

이날 은진송문에서는 송석근 대종회장, 송인한 장재유사, 송인집 총무유사, 송서호 목사공종중 회장, 송하영 장재유사, 송창공파 송구영 공사원, 사우당효정공파 송진괄 공사원, 동춘당문정공파 송용순 도유사, 송영진 총무, 송준빈 고문, 추파공파 송남섭 성균관유도회 대전본부회장, 우암문정공파 송영문 연재·심석재 선생의 종손, 송봉희 총무, 송영태 종원, 장성공파 송영래 공사원, 송애당(김경여)의 후손 경주김씨 계림군파대종회 김찬경 부회장 등이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