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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대종회 정보 > 인물정보송시영(宋時榮)
야은충현공파
야은 송시영 묘역 충북 청원군 남일면 야은 충현공 시영 정려각-충청북 향토유적 제47호 충북 영동군 심천면 야은 충현공 시영 유서 |
송시영(宋時榮) (1588/선조 21 ~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으로, 자는 공선(公先) 호는 야은(冶隱), 좌랑 송방조의 아들이며 우암 송시열의 사촌 형이다.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인조 초에 학행으로 받은 바 있으며, 1627(인조 5)년 정묘호란 때 동지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화의가 성립되어 중지했다. 이듬해 김장생의 추천으로 사재감(司宰監) 참봉이 되고 봉사(奉事)・직장(直長)을 거쳐 상의원 주부에 승진되었으며, 사복시 주부에 전임하였다. 1636(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종묘와 사직을 따라 강화에 건너갔다. 이듬해 성이 포위되었을 때, 이시직 등과 함께 1637년 1월 23일 자결하였다.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어 강화의 충렬사・회덕 숭현서원 별사(別祠)・영동의 초강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시는 충현(忠顯)이다. 그 충절이 인정되어 영동의 구거(舊居)에 정려를 명하였다. 1682(숙종 8)년 9월 19일 : 영의정 문곡 김수항과 우의정 노봉 민정중이 장계(狀啓)하기를, 송시영에게 포상함에 증직과 더불어 사시(賜諡)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일체 증직하고 사시함이 옳다하심에 이에 훌쩍 뛰어넘어 증 자헌대부 의정부우참찬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贈資憲大夫 議政府右參贊 兼 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으로 증직하셨다. 1685(숙종 11)년 8월 11일 : 충현공(忠顯公)시호가 내려졌다. 「임난불망국(臨亂不忘國)으로 난세를 맞이하여 나라를 잊지 않은 것 즉 충(忠)이고, 현(顯)은 행동이 안팎으로 돋보인 행견중외(行見中外)」이다. [『숙종실록』 숙종 11(1685)년 8월 11일] 1) 1638(인조 16)년 6월 25일 : 가묘에 사제 시 예관 박일성(朴日省)을 보내 치제(致祭)하고 사제문(賜祭文)을 내리다. 2) 1703(숙종 29)년 : 강화도 충렬사(忠烈祠)에 예관 유기행(柳榰行)을 보내 치제(致祭)하고 사제문(司祭文)을 내리다. 주부께서는 순수한 의를 지킴은 아버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요. 몸을 죽여가면서 인을 이룬 것은 충과 효가 다 온전한 것이다. 생략하다.(云云) 숙종대왕 어시(肅宗大王 御詩 次 樂靜 趙錫胤韻) 임금이 욕을 봄에 몸을 죽였으므로 신하의 절개를 마땅히 했으니 충을 본받음에 어찌 벼슬이 높고 낮음에 매이리요. 관방(關防 : 국경을 지킴)에서 명을 받고도 임금을 잊은 자들이여 냄새가 천년토록 날 터인데 어찌 부끄럽지 않겠느냐? 3) 1816(순조 16)년 : 병자호란 3주갑을 맞이하여 사제문을 내리다.(내용 전하지 않음) 4) 1817(순조 17)년 : 정축년 3주갑을 맞이하여 사제문을 내리다.(내용 전하지 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