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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물
대종회 소개 > 상징물은진恩津을 본관으로 하는 송씨는 고려판원사 대원大原을 시조로 하여 많은 학자와 현인을 배출한 명문거족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4세 집단공 명의明誼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회덕에 내려와 은둔한 선비였다. 중시조인 6세 유愉는 청상고절靑孀高節의 열부烈婦 류조비柳祖妣로 추앙받는 어머니를 모시고 회덕 배달촌白達村에 청착하니 그 땅이 송촌宋村이다. 그곳에 조촐한 당을 지어 명사들과 교유하며 유유자적하니 세인들은 은덕불사의 처사 쌍청당雙淸堂이라 불렀다. 7세 지평공 계사繼祀와 사직공 계중繼中에 이르러 가문이 크게 현창하여 호서사림의 연원이 되었고 조선 유학의 대표적 인물인 동춘당 준길浚吉 우암 시열時烈의 대학자가 배출되어 동국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이 정신은 가학家學으로 계승되어 문중에는 학자와 충신열사들이 연이어 배출되었다. 과거에 급제한 연방小科에 236명 용방大科에 75명 호방武科에 80명이나 된다. 임진 병자 양란兩亂에 순절한 5명과 을사늑약에 절사節死한 2명 충절로 화를 입은 분이 6명 충효열의 정려가 내려진 분이 20여명이요 2명의 정승 1명의 대제학 경연관이 12명 시호를 받은 분이 18명 부조不祧의 은전을 입은 분이 4명 호당湖堂이 2명 종묘배향이 2명 서원 배향이 20여 명에 이른다. 이분 들이 남긴 문헌이 280종이고 유적 유물이 전국에 산재해 국보와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이렇듯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은진송씨 39개파 25만여 종원은 오늘도 선조의 숭고한 충효 절의 선비정신으로 국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나라 발전과 겨레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우뚝 선 조형물은 위로 솟아오르는 생명감 넘치는 불꽃의 형상과 전통을 이어받은 은진송씨 뿌리를 상징한다. 상승감과 안정감이 함께 조화를 이룬 이러한 형상은 명문거족의 끝없는 발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앙에 자리한 힘있는 문주 형태의 석조물은 학문을 숭상하고 양심을 지켜온 선조들의 곧은 절의를 형상화한 것인데 이를 조형물의 정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이것들이 가문의 저력과 원천임을 암시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또한 은진송씨의 위상을 드높이고 면면히 맥을 이어가려는 계승의 의지를 담고 있는 역사의 문을 뜻하기도 한다.
2008년 8월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송백헌 짓고, 충남대학교 예술대학장 김석우 조각하다.
2008년 9월 27일 뿌리공원 현지에서 은진송씨 성씨비 제막식이 많은 종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2007년 봄부터 시작된 성씨비 건립은 상무유사회 파유사회의 승인을 받아 비문을 지어서 다듬기, 조형비 조각 맡기기, 비문해설집 책 만들기, 자금 마련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결실을 보아 그 위용을 하늘아래 내보이게 된 것이다.
성씨비를 건립하게 된 동기는 1997년 처음 성씨비를 세울 때는 대전시내가 온통 우리 은진송씨 유적을 볼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일부러 돈을 들여 또 비석을 세우느냐고 여러 종원들의 반대가 극심하여 참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세월이 10여 년간 흐르는 동안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뿌리공원에 다녀와서는 왜 우리 은진송씨비는 없느냐고 질문이 쇄도하고 또 이 공원이 관광지화 되면서 전국의 관광객이 끊임없이 오고 있어 와서 보고는 우리 것이 없으니까 실망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늘어나 전국에서 왜 우리 비는 없느냐는 질문이 부지기수로 많이 늘어나 이제는 우리도 성씨비를 세워야 하겠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늦었으나마 이제라도 성씨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우리 은진송씨는 136번으로 늦게 조형물을 설치하지만 공원 가장 중심부에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뿌리공원 조성 당시 처음에 72성씨의 조형물이 설치하고 개장했는데 종중에서 의견조율이 늦어져 은진송씨는 참여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조성한 것이 64성씨가 추가되어서 2차로 조형물이 완성되었다. 2차 마지막 조형물이 136번 「은진송씨 상징조형물」이다. 64개 문중들이 모여 추첨을 한 결과 은진송씨는 종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조상의 음덕으로 뿌리공원 가장 중심지를 뽑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늦게 신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에 위치하고 타성보다 면적도 넓게 설치되어서 방문하는 후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