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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회덕 거주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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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송씨가 이곳 대전(중리동 회덕)에 집거(集居)하게 된 것은 시조 대원의 증손 명의(明誼)께서 고려조에서 사헌부 집단(執端)을 지내셨는데 고려가 망한 후에, 벼슬자리를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고 전하지만 확실하지 않고 회덕으로 은거한 것은 사실이다. 선조께서 회덕에 은거하게 된 것은, 회덕이 바로 처향(妻鄕)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배위는 당대의 명문거족인 회덕황씨 황수(黃粹)의 딸이었다.
집단공께서 회덕황씨 가문의 사위로 정착하게 된 곳은 토물(土井)인데 지금은 대청댐 건설로 수몰된 대전광역시 동구 신촌리에 속한 마을이었다. 토물에 은거한 것이 이후 은진송씨가 회덕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집단공 명의(明誼)께서 회덕에 은거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고려왕조의 멸망이라는데 있다. 즉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집단공 명의의 아들 진사공 극기(克己)는 일찍이 하세하시고, 배위인 류씨부인이 아들 쌍청당(雙淸堂) 유(愉)를 잘 키웠다.
쌍청당 유(愉)는 조선조 초기에 왕자의 난(亂) 등으로 조정이 어지러워지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위패가 종묘에 모셔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송촌(宋村)에 터를 잡아 이곳에 은진송씨의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쌍청당 유는 대전광역시 중리동 75-1(종래 회덕면 중리)에 집을 짓고, 어머니인 열부 고흥류씨를 극진히 모시고서 학문을 연마하여 당대에 덕망이 높은 난계(蘭溪) 박연(朴堧),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溶) 등 그 밖에 저명한 명사들과 교분을 돈독히 하면서 은덕불사(隱德不仕)의 고결한 정신으로 맑고 깨끗한 일생을 마치셨다. 향년(享年) 58歲였다.
이후 은진송씨는 회덕땅을 세거지로 하여 대대로 살면서 한없이 자손이 번창하여 명현석학(名賢碩學)이 수없이 배출되고,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끊이지 않아 그 번성(繁盛)함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않은 이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은진송씨를 회덕송씨라고 별칭(別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조 판원사 부군 대원으로부터 26대 종손 교진(敎辰)에 이르기까지 쌍청당 께서 지으신 대종가(大宗家)에서 자리 한번 바꾸지 않고 양자 한번 없이 직계 혈통으로만 내려오는 것은 다른 종족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대전광역시 동구 송촌동은 류조비 정려, 쌍청당, 은진송씨 대종가를 비롯하여 동춘당, 제월당 등 각종 은송의 유적이 있는 은진송씨 대표적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