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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대종회 정보 > 인물정보송종빈
동춘당문정공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 옥고를 치룬 송종빈 송종빈은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9대손으로 조부 송진희는 철종 때 첨중추 통정대부로써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위장으로 나라에 공로가 현저하여 진산 옥녀봉을 중심으로 사패지를 받은 공신이며, 부 송구노의 장남으로 고종 을축(1865) 3월 2일 충남 논산군 두마면 향한리(계룡시)에서 태어났다.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이전 송종빈은 영가무용단을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영가무용단을 재정비하고 단원 이내수, 윤상옥, 김한복, 임종민 등과 함께 전북과 충남 일대에서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기위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11월 25일 동지 선영기와 함께 전북 익산군 망성면 어량리에 거주하고 있는 김용보로부터 군자금 108원을 모금한 것을 비롯하여 각처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다가 1921년 12월 30일 일경에게 체포당했으며, 1922년 3월 2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강도협박 및 장물수수로 징역3년형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룬 후 만주 길림성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8년 3월 12일 만주에서 병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 표창에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진산종중에서는 충남 금산군 복수면 곡남3리 조헌선생 사당 앞 부근에 1980년 9월에 건립하고, 2002년 11월에 보수한 「의사송공휘종빈기적비(義士宋公諱鍾斌紀蹟碑)」를 세워 선생의 큰 뜻을 후손들에게 선양하고 있다. 진산종중(송진희 후손집안)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송종빈은 동춘당 송준길의 셋째 아들 참판공 광천의 8대 주손으로, 조부 송진희는 철종때 무과 당상관으로 공훈이 있어 국가의 명에 의하여 부 송계권 산소(진산면 교촌리 숯고개)로부터 진산 · 완주 · 금산군수로부터 수백만평의 사패지(賜牌地)를 받아 송촌의 유산을 포기하고 진산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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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빈의사 기적비 충남 금산군 진산 |
종중에서는 송종빈이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일화만 전해오고 있었다. 1977년 국가에서 대통령 표창이 내려오면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후 진산종중에서는 주손 종빈이 행방불명되자, 둘쨋집 주손 송종선이 실제적인 종가역할을 했다. 송종선은 종형이 독립운동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밀을 철저히 지켰다. 이후 독립운동 자금지원으로 가세가 점점 기울다보니 큰집 재산을 다 팔아먹었다. 는 등, 집안에서의 모든 비난은 동생 송종선 에게 쏟아졌지만 그런 과정에서 온갖 비난을 다 감수했다. |